현실의 무게가 만들어낸 스릴러 – 강하늘 주연 《84제곱미터》 리뷰

1. 첫 장면부터 느껴지는 씁쓸한 설렘
넷플릭스 신작 **《84제곱미터》**를 재생하자마자 제일 먼저 와닿은 건, “아, 이거 내 얘기 같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주인공 **우성(강하늘)**이 은행 서류 뭉치를 끌어안고, 부모님의 지원까지 받으며 ‘영끌’로 겨우 마련한 첫 집 앞에 서 있는 장면. 그는 뿌듯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약간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죠. 영화는 그 눈빛이 앞으로 벌어질 불행을 예고하는 듯 시작합니다.
저 역시 결혼할 때 작은 아파트를 계약하면서 느꼈던 묘한 기쁨과 두려움이 겹쳐 보여서, 오프닝부터 이미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2. ‘국민평형 아파트’가 가진 상징성
영화 제목이자 배경인 84제곱미터(32평형)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상징’이잖아요. 누구나 꿈꾸는 ‘내 집 마련’의 기준선 같은 크기인데, 영화는 그 공간을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무대로 그려냅니다.
처음엔 하얀 벽과 새 가구들이 빛나지만, 곧 벽 너머로 울려 퍼지는 층간소음이 균열을 내기 시작합니다. 문득 밤마다 아이 울음소리, 발망치 소리에 시달려본 제 경험이 떠올라, 보는 내내 ‘현실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3. 강하늘의 연기 – 불안이 쌓여가는 얼굴
우성 역을 맡은 강하늘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초반에는 평범하고 성실한 청년의 얼굴이지만, 점차 소음에 잠식되고, 이웃의 시선에 압박당하며 무너지는 얼굴로 변해갑니다. 특히 그는 대사보다 표정과 숨소리로 감정을 전달했는데, 작은 떨림만으로도 시청자가 불안에 동화되도록 만들더군요.
한 장면에서 우성이 “정말 내가 한 게 아니에요”라고 외치는 순간, 그 눈빛에서 **‘나도 스스로 믿기 힘든 상태’**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전해졌습니다. 보는 제가 다 소름이 돋더군요.
4. 조연들의 힘 – 현실감과 긴장감의 교차
- 염혜란(입주민 대표 은화 역)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대표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했습니다. 주민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때로는 권력욕과 자기 욕심이 드러나는 모습이 있어,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이 배가됐습니다. - 서현우(윗집 진호 역)
그는 우성과 가장 밀접한 갈등을 벌이는 인물인데, **‘진짜 범인일까, 아니면 피해자인가’**라는 애매한 기류를 유지하며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그의 미묘한 미소 하나가 오싹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조연 배우들의 이런 호흡 덕분에 영화가 단순 개인의 공포가 아닌, 집단적 의심과 갈등의 드라마로 확장되더군요.
5. 연출 – 일상에서 스릴러로
연출 역시 치밀했습니다. 감독은 화려한 기교 대신, 좁은 아파트 복도, 닫힌 현관문, 천장에서 울려오는 둔탁한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압박했습니다. 특히, 조명이 꺼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성이 홀로 서 있는 장면은 단순한 이동 공간조차도 공포의 공간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운드 디자인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윗집에서 들리는 소리, 벽을 두드리는 소음, 심지어 우성이 숨을 고르는 소리까지, 관객의 귀를 파고들어 “내가 저 집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6. 영화가 던진 메시지
이 작품은 단순히 스릴러가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주거 문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마련했지만, 결국 그 집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 이웃과 공존해야 하는 아파트 구조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갈등
- 집을 자산으로만 여기는 사회 구조
영화 속 우성은 결국 **“집을 가졌지만, 집에 속박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어요.
7. 아쉬운 점 – 과장된 전개
다만, 개인적으로는 후반부 전개가 다소 과장되었다고 느꼈습니다.
현실적인 공포에서 출발했지만, 후반부에는 반전과 폭력적 장면들이 조금 과도하게 끼어들면서 ‘리얼리티 기반 스릴러’의 힘이 약해졌다는 아쉬움이 있었죠. 그래도 그 과장이 던지는 메시지 자체는 선명했기에 완전히 몰입을 방해하진 않았습니다.
8. 실제로 본 관객으로서의 총평
넷플릭스에서 <84제곱미터>를 시청하는 동안, 저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본 게 아니라 ‘현실을 극대화한 거울’을 들여다본 기분이었습니다.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 그리고 촘촘한 연출 덕분에 몰입감은 상당히 높았어요.
하지만 동시에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작은 안도감과 함께 묘한 씁쓸함이 남더군요.
9. 결론 – 불편해서 더 가치 있는 영화
《84제곱미터》는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과 너무 가까워서 불편하고, 때로는 숨 막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치이자 힘입니다.
강하늘의 눈빛에 끝내 울림을 느낀 저는, 이 영화를 **“불편하지만 반드시 봐야 할 스릴러”**라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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